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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

딕시칙스:셧업 앤 싱 (Dixie Chicks: Shut Up and S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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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미국 대통령이 텍사스 출신이라는 사실이 부끄럽다." (씨네21)


이라크 대 테러전 개전 전날 미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여성 3인조 컨트리 밴드의 위와 같은 발언은, 전시의 보수화된 미국 사회에서 날카로운 질타를 받게 된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벌이는 전쟁에, 시작 전부터 진저리가 나 있는 제 3세계 변방에 사는 우리같은 사람들이야(비록 동맹군을 파병하긴 했지만), 참으로 속이 후련한 얘기가 아닐 수 없지만. 어떤 나라에서든, 심지어 21세기의 가장 강대국이자 선진국인 미국 같은 나라에서도 히틀러의 망령은 아직 살아있나보다.

"Fascism will come to America, but likely under another name, perhaps antifascism." - Huey Long, 1932
"언젠가는 미국에도 파시즘이 상륙할 것이다. 하지만 그 이름은 다를 것으로 생각되는데, 아마도 반(反)파시즘이 될 것이다." - 휴이 롱, 1932 (숀 펜의 인용을 재인용)

히틀러는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재자로 기억되고 있지만, 사실 그는 독재자가 아니었다. 그는 정당하게 선거를 통해 당선된 지도자였으며, 그의 선출과 그로 인한 경제 부흥, 군국화 과정에서 독일의 지성인은 침묵하거나 동조했다. 파시즘이 무서운 이유는, 파시즘으로 인한 결과뿐이 아니라 한 나라의 이성이 파시즘에 의해 마비되어 가는 과정에 있다. 민주주의가 올바르게 기능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조직과 체제, 사회적 분위기가 유권자(또는 예비 유권자)의 이성과 판단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장려하고 배려해 주어야만 한다. 아이와 청소년은 양립되는 가치를 자신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판단할 수 있도록 교육받아야 하며, 어른은 사회가 기능하면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들과 관련된 정보, 상반되는 의견들을 여과없이 접할 수 있어야 하고 이에 대한 판단을 내리도록 장려되어야 한다. 그리고 충돌하는 가치를 대변하는 정당과 정치적 대리인을 지지함으로써 자신의 의견이 국가 운영에 반영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히틀러가 죽은지 60년이 지났지만, 미국을 필두로하는 몇몇 나라들은 그에게서 얻은 교훈을 잊고 있다. 대의민주주의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포퓰리즘의 특성은 자칫하면 양날의 검이 되어 파시즘으로 흐를 수 있다는 사실을. 오히려 그것을 이용하는 일부 정치인들에 의해, 국가의 주권을 가진 유권자들은 이기주의와 우민화의 덫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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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콘서트장에서의 말실수(?)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실존 밴드 딕시칙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발언으로 인한 집중 포화, 그렇지 않아도 보수적인 컨트리 팬의 외면으로 인한 어려움을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으면서도, 음악을 하는 여성의 인생이 원래 그랬듯, 강인하게 어려움에 대처하는 딕시칙스를 밀착해서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다.

어찌되었든, 이 영화는 희망적이다. 미국 대선은 뚜껑이 열려봐야 알겠지만, 부시 아저씨의 거짓말과 무능함에 질린 미국 시민들의 새로운 선택의 가능성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다. 그 이면에는, 사회에서 벌어지는 문제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발언할 용기가 있었던 한 뮤지션의 역할이 크다고 하면 과장일까. 신해철 이후로는 정치 사회적 현안에 대해 입을 여는 뮤지션이 없어져버린 우리나라에서는, 음악이 단순히 같이 춤추고 즐기기 위한 엔터테인먼트 도구로 전락해버린 것만 같다. 그런 면에서 아직은 우리가 미국에게서 배울 점이 많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Not Ready to Make Nice (2007 Grammy Awar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