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ru_happy

극장판 식객이 놓친 것들

[극장판 식객이 놓친 것들]

음식이라는 것은 참 좋은 이야깃거리이다. 굳이 영화나 만화가 아니더라도 일상의 대화에서도 우리는 종종 음식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먹는 행위는 우리 생활과 밀접하고, 우리에게 쾌감을 주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만큼 누구나 어떤 특정 음식에 대한 사연 정도는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이것은 굳이 거창한 음식이 아니라 어머니가 해 주신 밥, 학교 앞 분식집에서 친구들과 먹던 떡볶이라도 상관없다. 만화 ‘식객’이 뛰어난 점은 음식의 매력을 이러한 사연들과 자연스럽게 버무림으로써, 굳이 다른 요리만화들과 같은 경쟁 구도를 이용하지 않고도 매력적인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데에 있다. 수 편의 에피소드에서 성찬과 봉주의 대결이 펼쳐지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메인은 그들의 대결이 아닌 음식에 얽힌 드라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극장판 영화 버전의 ‘식객’은 이 둘의 대결구도를 전면으로 내세운다. 물론 관객의 호기심을 쉽게 끌어 올 수 있다는 점과, 상영시간에 맞는 이야기를 만들어야 했다는 점에서, 원작의 몇 가지 에피소드를 대결을 중심으로 변형하여 섞은 것 자체는 훌륭했다. 문제는 이 대결을 보여주는 방법에 있다. 우선, 음식을 늘 가까이 하기에 선하고 푸근한 인상의 성찬과 요리 실력에 강한 집착을 보이지만 강한 자존심만큼 페어플레이 정신도 가지고 있는 봉주는 온데간데 없고, 날카로운 인상의 성찬과 바보스러운 봉주가 등장한다. 특히 봉주와 그의 말도 안 되는 조수는 영화 내내 보기 괴로웠다. 포켓몬의 로켓단보다도 못한, 이렇게 매력없는 악역을 상대하고도 승리의 기쁨이 있을까? 이러한 악역의 지나친 희화화는 성인용 만화(청소년 층도 좋아하지만 코믹스 형태가 아닌 신문 연재기반이라는 점에서)를 영화화하면서 ‘만화는 애들이 보는 것’이라는 착각을 가진 건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들게 만든다. 당연히 그 인물들이 가지고 있던 깊이는 영화 내내 찾아보기가 힘들다.

인물의 깊이를 얇게 만드는 또 한가지의 원인은 주인공이 관객들과 함께 2시간 동안 요리를 하고, 여행을 하는 동안, 마땅히 성장한 점이 없다는 점이다. “원래 요리를 잘 하던 둘이 계속 대결을 하고는 끝이 나 버린다.”라는 이야기가 우리에게 남겨주는 것에 화려한 요리의 향연과 뻔한 승부의 결과, 그 이외의 것이 있을까? 원작의 감동적인 에피소드들을 끌어 오기는 했지만 이것들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이어볼까라는 고민만 하다가 그 감동을 어떻게 제대로 전달할 것인가의 고민은 잃어버린 듯한 느낌이다. 누군가가 내린 ‘극장판 맛대맛’ 이라는 혹독한 평가가 이해가 될 수밖에 없다. ‘식객’의 한계는 오래 전의 홍콩영화 ‘금옥만당’과 비교해도 극명하다. 역시 화려한 요리 대결을 메인 테마로 하고 있으면서도 그 과정에서 성장하는 주인공들의 드라마가 얼마나 재미와 감동을 주었었나.

4월에 방영 예정이라는 TV 드라마판 ‘식객’은 이러한 ‘드라마’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을까? 극장판에 비해 에피소드형 구성이 쉬운 방송용이라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김래원이라는 역시 성찬스럽지 않은 날씬한 배우의 캐스팅과 ‘운암정의 대표 자리를 놓고 벌이는 젊은 요리사들의 우정과 경쟁’이라는 컨셉으로 볼 때, 역시 원작의 매력과는 거리가 먼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미 ‘대장금’을 통해 신기한 요리 경쟁은 많이 봐 온 시청자들에게 요리 소재의 다른 드라마 ‘맛있는 청혼’이 주었던 만큼의 신선함이라도 살릴 수 있을지 우려부터 된다. 먹음직스러운 요리를 보는 것은 어디까지나 잠깐의 기쁨일 뿐, 우리가 ‘식객’이라는 이름으로 보고 싶은 건 ‘맛대맛’이 아닌 ‘드라마’라는 것을 제작진들이 이해하고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