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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비든킹덤에 관한 몇 가지 여담

[포비든킹덤에 관한 몇 가지 여담]

성룡과 이연걸의 첫만남이라는 이슈에도 불구하고 극장에는 그렇게 많은 인파가 보이지는 않았다. 헐리우드 내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서는 더 이상 이 둘은 막강한 티켓파워를 가진 캐스팅이 아닌 듯하여 세월의 흐름을 느낄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캐스팅을 제외하고 보면 패인은 너무 많은 관객들을 수용하려다 중심을 잃은 점일 것이다. ‘킬빌’처럼 무협 고전들을 오마주하기도 하고, 서양 사람들이 좋아하는 반지의 제왕 판타지의 뼈대와 특수효과를 가져다 쓰고, ‘가라데 키드’류의 소년 성장기까지 패키지로 묶었지만 킬빌처럼 아에 매니악하게 가지도 못하고, 너무 쉽게 풀려 버리는 저학년용 구성은 한계가 컸다. 하지만 이것저것 신경쓰지 않고 기분전환으로 보기에는 큰 무리 없는 영화이다. (개인적으로는 킬빌보다는 재미있었다. 킬빌이 걸작 대우를 받고 있기는 하지만 고전 작품에 대한 오마주에 열광하는 것은 매니아들에게나 해당되는 일이고, 파격이라고 해 봐야 서양에서 만들었다는 점이 그런 것이지 중국 무협 영화를 이미 봐 온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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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극장 보다는 TV가 더 친숙한 성룡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극장을 찾아가서 이 영화를 본 까닭은 바로 여기에 들어간 국산 CG때문이다. 한 동안 같은 길을 바라봤던 친구의 세계 데뷔를 확인하기 위해서... 모든 관객들이 다 나가고 직원이 눈치를 주었지만, 끝까지 크레딧을 지켜본 결과 그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녀석, 수고했다. 온라인 상에 이미 알려져 있다시피 포비든킹덤의 CG는 국내의 3개 CG전문회사가 컨소시엄을 구성해서 공동제작을 한 것이다. 그래서, 개봉하기 전부터 어떤 퀄리티를 보여 줄 것인가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정작 포비든킹덤의 극장용 광고(티져)에서는 ‘나니아연대기, 툼레이더의 제작진’이라는 표현을 써서 마치 헐리우드 산 CG인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마케팅 담당자들이 국산 CG가 들어간 것을 몰랐을 것 같지는 않고 그렇다면 이것은 일부러 숨긴 것인가 하는 의심이 든다. ‘디워’의 애국심 마케팅의 후유증 때문에? 국산이라고 하면 퀄리티가 낮아 보이고 헐리우드라고 하면 좋아 보일까봐? 어느 쪽이든 불신이 그 바탕에 있는 것 같아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이 영화에서 짚어보고 싶은 점 또 하나는 스패로우라는 캐릭터이다. 골든 스왈로우 혹은 금연자(황금제비나 쇠제비 정도 되겠다. 제비 모양의 다트를 무기로 써서 붙여진 이름인듯)라는 고전 중국 영화의 캐릭터를 패러디했다는 골든 스패로우는 이 역을 맡은 유역비의 앳된 미모 때문에도 주목할 만 하지만 (중국의 국민 여동생이라고 한다. 그럴만하다. 유역비 때문에 이 영화에 대한 내 개인적 평가도 많이 올라간듯… 쿨럭) 생각해 볼 만한 부분은 그녀의 대사이다. ‘스패로우라는 캐릭터가 따로 있나?’하고 처음에 착각했을 정도로 이 캐릭터는 ‘나’라는 주어를 쓰지 않고 대신 ‘스패로우’, 혹은 ‘She’라는 주어를 사용한다. 번역된 한글 자막은 ‘she’도 ‘스패로우’로 바꾸어서 ‘스패로우는 OOO해요.’같은 사오리 어법을 나타내고 있다. ‘미녀들의 수다’들의 인기 패널인 사오리는 ‘나는’ 이라는 말 대신 ‘사오리는’이라고 말하는 독특한 어법으로 유명한데 이는 자신을 ‘나’라고 부르지 못하는 일본 여성의 낮춤식 어법을 그대로 번역해서 생긴 습관이라는 설이 있었다. 스패로우의 사오리 어법을 들으면서 중국에도 그런 차별적인 어법이 있고, 그것을 영어로 직역하다 보니 저런 어색한 대사가 나온 건가 (“유감이에요. 안 됐군요.”가 “I am sorry”가 아니라 “She’s sorry.”라니 황당하기까지 했다.) 하는 추측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주인공 덕분에 복수를 마쳤으나 죽음을 눈앞에 둔 스패로우의 대사는 “I… Thank you.”였다. 그것을 듣고 나니, 막판에 와서야 ‘she’가 아닌 ‘I’가 된 것은 그저 우연이 아니고, 앞의 대사들 역시 실수였던 것이 아니라 의도된 대사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부모에 대한 복수만을 바라보느라 자신의 삶을 살 수 없었던 스패로우는 ‘나’라는 주체가 아닌 3인칭의 대상물일 수 밖에 없었고, 복수를 끝마치고 나서 자유로워진 스패로우는 비로소 ‘나’가 되었으리라… 자막을 무심코 읽어서는 눈치채지 못했을 중요한 메시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