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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심 혹은 편의- 아이들과 보는 ‘백사난’

[동심 혹은 편의- 아이들과 보는 ‘백사난’]

우선 여기서 말하는 ‘아이들’은 결코 내 아이들은 아니다. 난 아직 파릇파릇하다고 주장하는 미혼남이니까.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 줄여서 일명 ‘백사난’을 고르게 된 것은 그것이 연인들끼리 보기 좋은 작품일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막상 공연장을 도착했을 때 난 상당히 당황하기 시작했다. 관객들 중에 아이들의 비율이 상당히 많았기 때문이었다. 내용이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지나치게 유치한 작품이 아닐까 하는 걱정과 아이들이 소란을 피워 관람이 불편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밀려 들어왔다. 1층의 아이들은 이미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고 그나마 2층은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구나 안도의 한숨을 쉬려는 순간 여지없이 아이들이 들어 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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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극단유에서 제작한 이래 상당한 성공을 거두고 지금까지 공연이 되고 있는 ‘백사난’은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백사난’을 주로 공연하는 유씨어터는 청담동이라는 이른 바 상류층(?) 지역에 위치하고 있어 겉으로는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고 있으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소극장 공연의 매력을 상당히 잘 살리고 있다. (극단 명과 극장 명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이들의 소유자는 최근에 문화계 높으신 자리에 오른 그분(?)이다. 정치적인 호오는 일단은 여기선 생략) 소극장 공연은 일반적으로 공간적 제약으로 인해 영화와 같이 자유롭게 공간적 이동을 할 수 없지만, 여기서는 소품과 무대 장치들을 활용한 기발한 아이디어들로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있으며, 특별히 고안된 무대 효과도 기대할 만 하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손님들을 안내하던 직원들이 모두 극단 배우들이었다는 사실이다. 특히 공연 시작 전 무대에 올라 사전 안내사항을 안내하던 여직원 분은 (귀여운 외모를 가지고 있어 여자친구 몰래 유심히 바라 보고 있었던) 알고 보니 다른 시간에 있을 공연의 주인공이기까지 했다. 그 분은 마치 유치원 선생님 같은 능숙한 안내로 공연을 설명하고 아이들에게 주의사항들을 알려 주었고 아이들은 ‘네에~!’하는 밝고 귀여운 목소리로 응답을 했다. 이내 아이들은 착한 어린이들이 되어 공연을 감상했고, 그리고 그 이상을 공연에 기여해 주기 시작했다.

‘피터팬’의 탄생 배경을 다루는 ‘네버랜드를 찾아서’라는 영화가 있다. 여기서 죠니 뎁이 연기하는 주인공 극작가는 아이들과 함께 동심어린 시간을 보내다가 그 아이들을 쏙 빼닮은 피터팬의 이야기를 구성하여 연극 무대에 올리게 된다. 그리고 그 초연에 수많은 아이들을 초대한다. 우아하고 근엄한 자세로 연극을 관람하던 어른들은 아이들의 적극적인 감정 표현에 점차 동화되고 모두 한 마음이 되어 공연에 빠져 들기 시작한다. ‘백사난’을 보다가 느낀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어릴 때도 감정 표현에 적극적인 편이 아니었기에 ‘동심으로 돌아갔다.’라는 흔한 표현은 어색할 수도 있겠지만, 그냥 속에만 묻어 둘 수도 있었던 감정들을 아이들처럼 꺼내 보는 일은 상당히 즐거운 경험이었다.

지금도 극장에서 떠드는 아이들은 관람을 불편하게 하고, 나를 짜증나게 한다. 하지만, 때로는 이렇게 아이들의 눈과 감정으로 무언가를 바라 보는 기회를 가지는 일은 삭막해져가는 생활에 작은 힘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참고: 바른말 고운말(?)
: 난장이는 실은 난쟁이가 맞다. 장이는 보통 전문적인 직업에 붙이고 (미장이), 쟁이는 성격, 특성에다 붙인다. (욕심쟁이) 다만 점쟁이, 요술쟁이 같은 직업에도 쟁이가 붙는 경우가 있는 것을 보면 이것은 약간 비하적인 느낌이 들어가 있는 건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