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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드 레이서로 보는 일본 문화, 그리고 한류

[스피드 레이서로 보는 일본 문화, 그리고 한류]

스피드레이서에 대한 평은 분분하지만 대체로 악평이 대세인 것으로 보인다. 일단 개인적인 평가는 기대 이상이었다. 알록달록한 색깔이 요동을 치는 예고편 때문에 기대를 너무 안 하고 있던 탓도 있지만, 그러한 표현이 가치가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기도 하다.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등과 같은 영화들은 마찬가지로 단순명료한 히어로물 만화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영화화를 위해 적절한 각색이 되어 있는데 반해 이 작품은 원작의 느낌을 최대한 그대로 끌어오려고 한다는 점에서 ‘신시티’의 컨셉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공각기동대’로부터의 영감을 가져 왔던 매니아적인 전작 ‘매트릭스’가 대중적으로도 엄청난 성공을 거두어버리면서 생긴 기대감 때문에, 마찬가지로 애초에 매니아적인 방향성을 가지고 출발한 이 영화가 괜히 돌을 더 많이 맞게 된 건 아닐까. 원색적인 색감은 TV의 광고로 보았던 것보다는 디지털 스크린에서 훨씬 잘 어울렸고, ‘오바’하고 있다기보단 만화적이고 미래적인 배경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역동적인 이미지 역시 대형화면에서 잘 살아났다. 이 영화를 만약 컴퓨터 모니터로 보았다면 나 역시 경마나 자동차 레이싱을 TV로 보았을 때처럼 지루하게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소년 만화의 설정을 그대로 옮겨 왔으니 이야기가 유치하다는 평가는 당연한 일이므로 생략하면, 이 영화 실패 요인으로 생각해 볼 점은 어느 영화잡지 평론가 분의 평대로 시대와 국가적인 사고가 맞지 않다는 점인 것 같다. 21세기의 현실 정서와 가족기업의 가치를 숭상하는 6,70년의 일본 정신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관객이 아니라 ‘스파이키드’를 즐겁게 봤던 미국 관객들까지 이 영화를 폄하하는 것은 그것 때문이 아닌가 한다. 다른 이미지는 받아 들이기 쉽지만 다른 생각은 받아 들이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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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스피드레이서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일본 문화를 담은, 혹은 일본 영화를 리메이크한 헐리우드 영화는 계속 늘어날 조짐이다. 그 기본 바탕은 소재 고갈의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라는 점에 있기에, 일본 영화 외에도 공포 영화들을 중심으로 태국이나 한국 등의 아시아권 영화들도 판권이 팔리고 있지만, 워쇼스키 형제의 차기작도 닌자 이야기일 만큼 유독 영화계에서 일본 문화는 높은 대접을 받으며 하나의 큰 문화 현상이 되어가고 있다. 제2의 자포니즘이라고 해야 할까? 사실 오래 전에는 헐리우드의 거장들이 구로사와 아키라 같은 일본 감독의 영향을 받았다는 말들이 잘 와 닿지 않았다. 자기네 서구인들의 눈에는 일본 역시 아시아의 ‘미개’한 국가로 밖에 보이지 않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의 그런 생각을 완전히 무너뜨려버린 단어가 바로 ‘자포니즘’이었다. 자포니즘은 19세기 유럽을 강타했던 일본 문화의 유행을 말한다. 유럽인들이 일본산 도자기를 사 들여올 때 포장지로 덮여 있던 우키요에 판화에 반해 시작되었다는 이 유행은, 고흐 같은 당대 최고 작가들의 그림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대학에서 디자인문화론이라는 수업을 듣기 전에는 이런 사실들을 전혀 모르고 있었으니 “우리나라 교육계에서는 이것을 일부로 감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곤 했다. 서양 작가들의 일본 문화에 대한 존중은 하루 아침에 생긴 게 아니라 이처럼 이전부터 쌓여 온 가치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한류’라는 말이 유행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아시아로 국한된 현상이었다. 그러나, 한류가 있었던 덕분에 한국의 배우들이 헐리우드 영화에 캐스팅되기 시작하고 있다. 아시아 전역에서 인지도를 가진 스타가 좋은 흥행 요소가 될 것 같아 선택하는 것뿐이지 한국 영화나 문화의 위상 자체가 오르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를 가지고 ‘코리아니즘’ 운운하며 한국의 위상이 높아졌다고 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좋은 출발이라고 생각한다. 김윤진의 이름이 있기에 ‘세븐데이즈’라는 이름이 좀 더 쉽게 팔릴 수 있었을 것이고, 이렇게 점차 한국의 작품들이 전해지면 자연히 한국 문화를 노출시킬 기회도 늘어갈 것이리라. 과거에는 헐리우드의 한국 배우라고 해 봐야 대부분 교포 출신이어서 언론이 자랑스러운 한국배우 운운하는 것이 호들갑떠는 것으로 밖에 안 보였던 데 비해 한국에서 출발해서 처음으로 선전을 해 준 비의 모습은 그래서 뿌듯하다. (김윤진은 미국 출생으로 ‘쉬리’의 성공과는 상관없이 현지에서 오디션을 봐서 ‘로스트’에 캐스팅되었고, 박중훈의 진출은 성공적이지 못했으니 제외)

 ‘일본이 참 부럽다.’라는 것을 크게 느낀 일은 일본에서가 아니라 호주에서의 경험이었다. 그곳에서 일본인 아티스트들과 공동으로 비디오 아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던 호주인 교수님과 일본 문화에 심취해서 일본 교환학생을 다녀오고 그곳에서 조연 연기자 생활까지 했다던 호주인 친구는 일본어까지 섞어 가며 일본 문화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한국의 문화도 좀 더 알려져서 외국인들이 한국에 대해서도 그렇게 말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그 전에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문화가 무엇인지 좀 더 고민을 해야 하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