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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그넘 KOREA – 타인의 눈에 비친 것

[매그넘 KOREA – 타인의 눈에 비친 것]

카메라와 사진이라는 매체는 이미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하다. 과거에는 ‘기록’이고 ‘기념’이었다면 지금은 ‘취미’이자 ‘예술’이자 ‘생활’이랄까? 오늘 하루에만도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찍히고 있고, 나는 집 한 구석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이 순간에도 사진 속에 담긴 많은 사람들을 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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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그넘 KOREA 사진전은 오히려 이러한 깊숙한 친밀감 때문에, 내겐 다소 어색하게 보였다. ‘사진전’이라고 하면 떠올려지는 그런 이미지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뭔가 딱딱하고 고급스러울 것만 같은 ‘전시장’이라는 배경은 종종 고요함을 즐길 수 있는 좋은 장소가 된다. 사진을 감상하는 순간에 그 자체의 이미지만을 바라보는 것은 아니고, 괜히 예술 전문가라도 되는 양 폼 잡고 분위기를 느끼면서 스스로의 망상에 빠져 보는 것이다. 그러면 작은 사물에 불과했던 사진은 내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기도 한다. 하지만, 매그넘 사진전은 그러기에는 너무 붐볐다. “지금 사람이 많아서 입장하시려면 20분 정도 기다리셔야 할 수도 있어요.”라는 매표소 담당자 분의 말이 있었지만, 20분을 기다린다 한들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아 나는 친구와 함께 전시장에 들어섰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진을 이렇게 좋아했었나?’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윈도우 쇼핑을 하는 사람들처럼 차례차례 대열을 이루어 전진해 나아갔다. 도슨트(사진 작품을 해설해주시는 분) 쪽에는 특히 대규모의 인원이 모여 있어 나는 일부러 반대쪽으로 피해 다니며 사진을 봐야 했다.

사진의 이미지도 그러했다. 매그넘의 사진들은 ‘와.’하는 경탄을 주지는 않았다. 워낙 화려하고 멋진 구도를 가진 예술사진들에 익숙해져 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사진들은 좀 더 ‘기록’이라는 개념에 가까워서 기교보다는 현장을 그대로 옮긴 느낌이었다. 특이한 것은 분명 이것이 바로 1년 전인 2007년의 사진들임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마치 70년대의 사진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흐릿한 하늘과 얼룩진 건물들, 주름진 얼굴의 노인. 분명 남대문이 보이는 서울의 현장이지만 그것은 ‘오늘’이 아니라 ‘어제’였다. 날짜가 분명히 찍혀 있지 않고, 한국에서 찍었다고 분명히 적혀 있지 않았다면, 이 작가들을 한국을 이삼십년 전 같은 풍경에 동남아시아에서나 볼 법한 뱃사공으로 그려냈던 미드 ‘로스트’의 제작진과 마찬가지로 한국에 대해 알지 못하는 서양인들 취급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졌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사진 속의 사람, 광화문 부근으로 보이는 곳에서 찍힌 직장인을 알아보고는 신기해하면서 그 사람에게 전화를 건 것이었다. 외국인 작가와 그에게 사진을 찍힌 한국인과 그 사진을 우연히 마주친 친구들이라는 이상야릇한 조합은 이것이 과거가 아니라 현재임을 일깨워주었다.

사실 사진이라는 것 자체가 찍고 나면 더 이상 ‘현재’가 될 수 없는 본연적인 한계를 가지고는 있기는 하다. 하지만 변화한 대상이 타자가 아닌 우리, 혹은 나 스스로일 때는 그 시간차이가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다. 지극히 주관적인 감상일 따름이지만, 매그넘의 한국 사진들을 굳이 하나로 정의 내리려고 애써본다면, “스틸 사진에서도 느낄 수 있는 한국의 ‘역동성’”이 될 것 같다. 변하지 않는 것만 같은데 정말 빠르게 변한 한국,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곳. 그와 동시에, 변하지 않은 줄 알았는데 너무나 변해 버린 나 자신. 좋은 쪽으로만은 아닌 변화들. 이러한 아쉬움과 낯설음이 내가 매그넘 사진에서 처음 느꼈던 어색함의 정체였을 수도 있다.

사진이 전시되는 곳 옆에는 따로 매그넘의 창립자인 로버트 카파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상영되고 있었다. 전시장에는 그렇게 사람이 많더니, 거기에는 컴퓨터의 관리자도 없고 다른 관객도 없어, 친구와 나는 직접 컴퓨터와 스피커를 연결하고 영상을 보게 되었다. 사진전이 ‘조금 실망스러움’에서 시작해서 ‘의미 있음’으로 끝났다면, 다큐멘터리는 강렬한 인상 그 자체였다. 영상 속 사진들에 전쟁의 현장을 그대로 남기려고 했던 치열함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러한 ‘치열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느슨해진 내 삶에서 잠시 놓쳐버린 치열함을 되찾아 의미 있는 삶의 장면들을 만들어 가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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