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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 - 그 간절함에 관하여

[메멘토 - 그 간절함에 관하여]

‘다크나이트’의 흥행이 계속 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만화 속의 캐릭터를 진짜 같은 현실로 끌어 들여와 상당히 인상깊었던 ‘배트맨 비긴즈’가 기대만큼의 흥행을 하지 못했었기에, 이번의 결과는 조금 의외이기도 하다. 어쨌든 이번에는 ‘메멘토의 천재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이 대중적으로도 이름값을 하고 좋은 평가를 받는 것 같아 왠지 기분도 좋다. 친구와 함께 극장을 나서면서, “으아아, 이렇게 갈 데까지 다 가버리면 (너무 잘, 그리고 너무 적나라하게) 도대체 다음 편에선 어쩔 셈이야!?”라고 탄식을 나누었던 ‘다크나이트’는 일단 시간을 두고 좀 더 곱씹어 볼 참이라, 이번에는 크리스토퍼 놀란이라는 이름을 우리 머리 속에 처음으로 새겼던 ‘메멘토’에 대한 기억을 되돌려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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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는 ‘유주얼 서스펙트’나 ‘식스센스’처럼 한때는 ‘반전영화’의 대명사로까지 군림했던 영화라 할 수 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독특한 편집 구성으로도 유명해서, 이후에도 이와 유사한 구성이 등장할 때마다 빼놓지 않고 그 이름이 등장한다. 그때만해도 이는 상당히 파격적인 구성이었기 때문에, ‘난해하다,’ ‘이해가 안 간다.’라는 평가들도 많았고, 그 때문에 온라인 상에서 ‘이 영화의 반전이 무엇인가?’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등에 대한 문답들도 꽤 많이 오갔었다. 내 주변에서도 이 영화에 대해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던 사람들과 무슨 내용인지 이해가 안 간다는 반응이 함께 있었다. 이해가 안 간다는 쪽의 한 경우는 영상언어를 나름 공부한 친구였기 때문에 그 친구가 스토리 흐름을 못 받아들였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단지 그 친구가 살아 온 경험은 레너드라는 인물과 그의 감정에 동화되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감독과 작가(감독의 동생으로 나중에 소설판 ‘메멘토 모리’를 냈음)가 ‘답은 A이고 B와 C는 아닙니다.’라고 정의 내리지 않는 한 (그럴리도 없지만), 영화에 대한 해석은 자유로울 것이기에, 나 역시 어떤 해석은 옳고 어떤 해석은 그르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나의 해석은 ‘기억’이라는 것에 초점을 두는 대다수의 해석과는 조금 다르다. 하지만, 내가 당시에 분명히 내렸던 결론은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삶에 대한 간절한 욕구’라는 것이었다.


메멘토가 가진 반전은 ‘주인공인 레너드의 기억이 조작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사실 비교적 빠른 시간에, 그를 이용하려는 테디와 나탈리의 행동에 의해서 드러난다. 자신이 ‘새미’라고 기억하는 인물이 사실은 주인공 자신이라는 반전도 등장한다. 그러나, 이보다 중요한 반전은 결말부에 이르러서야 등장한다. 바로 ‘레너드 자신도 자기의 기억을 조작했다. (테디를 범인으로 몰기 위해)’는 충격적인 사실이다.


메멘토는 ‘기억’에 관하여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특히 ‘기억의 조작’은 현실에서 보여지는 ‘정보의 불일치에 따른 혼동’이나 자연적인 시간의 흐름에 따라 특정한 사실, 예를 들면 좋았던 일이나 안 좋았던 일만을 기억하게 되는 ‘인식의 변화’와도 연관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 내에서 가장 중요한 물음은 ‘기억’ 그 자체도, ‘반전이 얼마나 기가 막힌가.’도 아니고 ‘과연 그렇다면 그는 왜 자신의 기억을 조작했을까?’라고 본다. 그리고 바로 그것에 대한 답이 이 영화의 핵심적인 메시지가 될 것 같다. 그의 행동은 아내를 죽음으로 몬 자신의 잘못에 대한 죄책감이나 자기 잘못을 잊어버리려는 ‘자기합리화’에 의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만약 그의 처지였다고 생각해보면, 아내의 죽음이 너무 슬프고 힘들다면 스스로의 목숨을 버리는 것을 택하지 남의 목숨을 계속적으로 빼앗는 것이나 남의 도구가 되는 것을 택하지는 않을 것 같지 않나?

그렇다면, 과연 왜 그는 존 G라는 누구나 대상이 될 수 있는 표적을 원수로 설정하고,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는 테디마저 존 G로 설정해야 했을까. 그 답은 레너드 자신이 불태워버린 사진 속의 자기 모습에 있다. 희열에 가득찬 그의 표정은 바로 자신의 꿈을 실현한 모습이었던 것이다. 만약 당신이 레너드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고 생각해 보자. 추억을 먹고 사는 것이 사람이고, 사람과 어울리면서 살아가는 것이 사람인데, 당신은 10분마다 기억이 사라져서 정상적인 생활을 도저히 할 수 없는 입장에 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답은 둘 중 하나다. 그 삶 같지도 않은 삶을 포기해버리던지, 그 삶을 삶이 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무언가 의미를, 가치를, 목적을 부여해야만 한다. 레너드는 전자를 택하는 대신 후자를 택했다. 그것이 지극히 비인간적인 목적인 살인일지라도 말이다.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하는 것이 인간의 생리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레너드와 같은 극한 상황에 처해 있지는 않지만, 다양한 원인으로 인하여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을 겪어 본 사람은 상당히 많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럴 때면 어떻게든, ‘새로운 목표를 내 자신에게 부여해서라도’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레너드라는 인물이 감정적으로 더 가깝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크리스토퍼 놀란으로 되돌아가면, 그의 연출이 뛰어난 점은 ‘역순행과 컬러와 흑백의 분리’라는 독특한 편집을 사용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기법이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주효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메멘토’와 종종 비교가 되기도 했던 ‘돌이킬 수 없는’이 행복한 순간과 최악의 순간을 극명하게 대조시키기 위해 ‘역순행’이라는 기교를 사용했다면, ‘메멘토’는 같은 ‘역순행’을 회상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기억’을 상징화하면서 감춰진 반전을 극대화하는 기술로 사용했다. 새로운 배트맨 시리즈에서 그는 만화적인 상상력으로 점철되었던 시리즈를 ‘사실주의’라는 기법으로 대대적인 전환을 시도한다. 논란은 있지만, 적어도 나에겐 그것은 분명한 성공으로 보였다. 과연 다음에는 그가 무엇을 보여 줄 지 정말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