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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나는 비와 함께 간다.

   3명의 간지나는 남성. 실종된 남성. 남성을 찾는 또 다른 남성. 비. 포스터만으로 정말 여러가지가 생각납니다. 놈놈놈, 스릴러, 액션. 심하게는 정지훈까지 상상이 되더군요. 감독은 트란 안 홍. 전작은 하나도 못 봤지만 씨클로를 만들었고 곧 상실이 시대를 만들 감독. 큰 기대를 가지고 극장을 찾았습니다. 영화를 보는 동안 5커플이 자리를 떴고 영화가 끝나자 여기저기서 욕지기가 들렸습니다. 함께 본 친구도 마찬가지구요. 내가 보러 가자고 우겼으니까. 그런데 이거 걱정이네요. 이제 내 취향은 대중적인 것에서 많이 벗어나 버린 것 같습니다. 영화 꽤 좋았습니다.

   내용이든 뭐든 하나도 모르고 시작했는데 종교영화더군요. 심하게 말하면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영화가 끝나고 난 영화가 좋다고 하자 친구 놈은 이새끼는 지 교회 다닌다고 기독교 이야기만 나오면 영화 좋다네라는 멘트를 날리더군요. 그래서 오기로라도 종교 이야기는 싹 빼고 영화의 장점을 좀 이야기 해보고 싶지만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을 것 같네요.
   클라인은 쉽게 말해 사설 탐정입니다. 옛날엔 경찰이었구요. 그는 그 만의 수사방법이 있습니다. 살인의 추억에서 봤나 뭔 책에서 봤나 기억이 정확하진 않은데요. 경찰이 범인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는 거죠. 그래서 다음 타깃을 먼저 추정하고 놈을 잡으러 가는 겁니다. 물론 처음부터 그렇진 않았어요. 과거 잘나가는 연쇄살인범 하나를 잡다가 그렇게 돼 버린거죠. 하지만 그는 연쇄살인범을 잡다가 이성을 잃죠. 그리곤 사설 탐정. 그는 높은 사람의 지시로 시타오를 찾아 나섭니다. 이 작품의 캐릭터는 성경의 캐릭터와 굉장히 닮은 부분이 많은데요. 클라인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끌어내려 안고 사라집니다. 성경에도 그런 캐릭터가 있었는데 기억이 안나네요.
   시타오는 닥터 K입니다. 예수구요. 다른 사람의 고통을 전부 자신의 것으로 만들죠.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입니다. 그는 고통받고 그를 거쳐간 사람은 전부 평안합니다. 그에게 왜 그런 능력이 생겼는지는 몰라요. 그는 죽지 않고 고통만 당합니다. 뭐 좋아요. 많은 사람들을 치료해주니까. 성경에서처럼 아버지는 완전 끝내주는 권력자. 문제는 수동포의 여자가 시타오를 못 잊는다는 겁니다.
   아. 몸은 진짜 최고. 수동포 역할의 이병헌입니다. 놈놈놈에서와 비슷한 캐릭터. 자기 여자가 딴 놈에게 가니까 아주 미치지요. 원래 반쯤은 미친거 같고. 여자를 찾아 다니다가 개로 노숙자 패는 장면은 진짜 최고의 아이디어인 듯 싶네요. 수동포는 성경에서 딱 맞는 캐릭터가 있죠. 바로 본디오 빌라도입니다. 본디오 빌라도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기 전에 굉장히 고민합니다. 자기가 하는 일이 옳은지 옳지 않은지. 예수에 대한 두려움도 있구요. 하지만 결국 마지막에 박자고 결정합니다. 시타오에게 '난 니가 두렵지 않다'고 하지만 흔들리는 눈에서 빌라도가 보이더군요. 홍콩에서 알아주는 깡패로 나옵니다. 홍콩의 형사 조맹지가 잡고 싶어 안달이 났죠.
   아주 맘에 드는 캐릭터인데 사진에서 인상적인 플레이를 보여주고는 뒤에는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 버립니다. 영화에서 가장 안타까운 점 가운데 하나죠. 클라인과 막역한 사이로 나오는데 어떻게 그런 관계가 만들어졌는지는 역시나 설명이 없습니다. 홍콩의 외곽지에서 수동포를 만나 후진으로 따라잡고 욕설을 날리다가 총 꺼내는 장면도 정말 인상적입니다. 결국 시타오와 직접적인 연관관계가 없어 사라진게 아닐까 싶네요. 창녀와 자고 와 방에서 대머리와 총질하는 장면은 인상적인 교차편집.

   릴리와 하스포드도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합니다. 릴리는 조맹지에 의해 창녀로 불리며 시타오에게 돌아가는 걸로 봐 마리아의 역할을 하고 있고 하스포드는 2년 전 클라인이 쫓던 연쇄살인범으로 클라인의 인생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제시합니다.

   클라인은 과거 하스포드를 쫓았고 지금은 시타오를 찾고 있습니다. 시타오는 고통받는 사람을 찾고 있고 수동포 역시 시타오를 쫓고 있죠. 조맹지는 수동포를 쫓고 있지만 결국 클라인은 수동포에게 가 시타오의 행방을 묻습니다. 물고 물리는 듯 보이지만 결국, 모든 사람은 시타오를 찾고 있습니다. 결국 종교적인 영화가 될 수밖에 없죠. 특히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감정인 고통과 두려움을 종교와 접목해 보여줍니다.

   클라인은 하스포드를 통해 고통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특히 하스포드는 클라인과의 마지막 만남에서 자신이 잡아 죽인 인체로 고통을 표현한 조형물을 보여주는데요. 그 조형물이 이 영화 전부를 말한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웃고 즐겁게 살고 있지만 결국 기독교인이 떠 받드는 예수도 고통 속에서 죽어 갔으니까요. 물론 성경은 그 뒤의 부활로 고통 뒤의 행복을 보여주지만 영화는 현실만을 보여줍니다. 결국 미래를 보여준다는 것은 리얼리티를 거부한다는 거니까요. 대 놓고 말하면 성경의 현실만 보여준 영화. 고통스러운 현실만 보여준 영화라 하겠습니다. 그러니 커플이 영화 도중에 뛰쳐나갈 수밖에 없죠.

   종교 이야기는 쏙 빼고 그냥 그림 이야기만 해볼께요. 감독이 붉은 색과 빛을 정말 잘 씁니다. 영화 내내 피칠갑하는 장면이 종종 나오는데 정말 아름답습니다. 수동포가 릴리를 되찾고 붉은 드레스를 입은 릴리. 다음 컷이 조맹지가 사창가에서 여자와 자는 장면. 홍등. 세로 구도의 절묘한 대비로 수동포와 조맹지의 대립 관계를 보여줍니다. 릴리가 돌아왔을 때 수동포가 입은 셔츠와 빛. 백열등과 형광등 사이를 오가면서 보라와 핑크를 오가는 셔츠는 진짜 환상적입니다. 그 외에도 정말 감탄이 저절로 나오는 영상들로 가득합니다. 내용에 어떻든 간에 눈은 정말 즐겁고 라디오 헤드의 음악으로 귀도 정말 즐겁습니다.

   마지막은 동양적인 해석을 이야기하고 싶네요. 베트남 태생의 감독은 성경과 고통을 이야기하면서 동양적인 것을 굉장히 많이 삽입합니다. 그것도 서양인들이 느낄만한 이질감을 최대한 배제한 채 말이죠. 동서양이 적절하게 믹스된 홍콩이란 배경. 물고기의 부레를 먹는 조쉬 하트넷.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조맹지. 부처가 열반할 때 나타는 금박을 입은 십자가에 못박힌 시타오. 이러한 문화의 짬뽕은 이 영화도 영화지만 1Q84에서도 이야기 했던 하루키의 장점이자 단점. 좋게 말해 이질감 없고 나쁘게 말해 특색이 없는 그림을 아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트란 안 홍 감독이 만들게 될 상실의 시대는 완전 기대가 되네요. 정말 좋은 조합이니까요.

   교회를 다니는 제가 영화를 보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미래를 생각합니다. 그제도 로또를 샀다가 어젯밤에 그대로 구겨서 버렸죠. 자신의 미래가 불안하긴 하지만 개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물론 요즘은 조금은 있을 거 같네요. 슬픈 일이죠.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은 미래를 아름답게 생각할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해야 할 건 현실의 고통입니다. 시타오를 봅시다. 예수 말고 시타오를요. 고통 속에 있지만 참고 또 참고 또 참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해야 할일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자신이 해야할 일이 고통스럽다는 것도 알고 있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바로 앞의 고통을 결국은 참아야 합니다. 간단한 진리죠. 그렇지만 그것을 실천하기는 어렵습니다. 저부터가 그러니까요. 자꾸 돌아가려고 하고 뒤로 밀어두려고 하는 저를 보게 된거죠. 모두들 힘들게 살고 있을텐데 눈 앞에 고통 참고 또 참으면서 나가봅시다. 미래는 밝지 않을까요?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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