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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

초속 5 센티미터 -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

"별의 목소리",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등에서 이미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소녀적 감수성을 보여주었던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 초속 5 센티미터는 더도 덜도 말고 자기만족에 빠진 고등학생이 쓴 하이틴 소설과 같은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고등학생이었거나 심지어 그보다 더 어렸을 때 보았으면, 어쩌면 인생을 바꾸어준 명작 운운 하며 평생 기억하게 될 정도로 가슴 저미는 감수성.

그런데 사실 이 작품을 보면서, 전술된 것과 같은 비아냥거림은 미처 머리속으로 들어올 새도 없이 몰입하고 또 몰입하게 되었다. 그림에 빠져들어버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클릭 한 번 해보세요. (출처: cafe.naver.com/chosok5cm)


그림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보니, 짧은 3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는 영화가 끝이 나 있었다.



살다 보면 그럴 때가 누구나 한 번씩은 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육신과 영혼으로 나누어 진다고 했을 때, 그 영적인 부분은 다시 또 여러 가지 종류로 이루어져 있는 것 같다. 예술을 즐기고 만들어내는 부분. 자아를 성찰하는 부분. 이상을 설계하고 추구하는 부분. 누군가 다른 영혼를 그리는 부분. 누군가 다른 영혼을 그리는 부분, 이 내 영혼의 전부를 차지하다 못해, 결국 나라는 인간 전체가, 그리워하는 사람의 영혼으로 온통 뒤덮여있는 것 같은 느낌까지 들 정도로, 살다 보면 그렇게 예민해질 때가 누구나 한 번씩은 있다. 몸이라는 물리적인 은폐막 안에 숨어 거의 죽을 때까지도 드러나지 않곤 하는 이 영혼이라는 것이 몸 밖으로 살며시 드러나는 유일한 시기. 나는 실제로 살다보면 몇 번은, 드물게 그럴 때가 있다고 믿는다.

이 영화는 영혼을 몸 밖으로 드러낼 정도로,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과, 그 시기와, 그 경험을 잃어가는 과정에서의 안타까움과, 무뎌져서 기억을 지워버리지 않는 이상, 언제나 때로는 고통처럼 한 사람을 괴롭히는 - 또는 행복하게 하는 - 추억에 관한, 진부하기 짝이 없으면서도 사치스러울 정도로 아름다운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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