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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계에서 이상주의자의 몰락을 보다

[색계에서 이상주의자의 몰락을 보다]

*주의: 스포일러 많음


영화를 보면서 얻을 수 있는 메시지는 무수히 많을 수 있다. 감독이 의도한 메시지는 하나 혹은 몇 개일 수 있으나 일단 감독의 손을 떠난 영화는 관객 그 자신의 생각과 경험과 얽혀 다른 메시지들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어떤 작품에 대한 글을 쓰기보다는 어떤 작품 내에 보이는 A라는 요소로 다른 주저리를 끄집어 내려고 하는 편이다. 영화의 본래적 의미와 문법적 요소에 대한 분석은 다른 많은 전문가분들이 알아서 해주실 테니까.

‘색계’라는 작품은 일제의 영향 하에 있던 2차대전 무렵의 중국을 배경으로 친일파 정보부 대장 이(양조위 분)와 그를 암살하기 위해 스파이 활동을 하는 왕 치아즈(탕웨이 분)를 다룬 이야기이다. 원작 소설은 극중 후반부 만을 다룬 짧은 단편이었다고 하니, 역사의 희생양이 되는 그들의 사랑과 심리에 대한 세밀한 묘사는 이안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강렬한 섹슈얼리즘도 이슈가 되었는데, 내게는 적나라하게 보여지는 둘 사이의 관계보다도 이를 만나기 위해 그녀가 겪어야만 했던 일이 충격적인 이미지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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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죽여야 하는 사람을 사랑해서 죽이지 못한 그녀나, 사랑하는 사람을 죽여야 했던 그보다도 내게 쓰라림을 주었던 인물은 따로 있었다. 바로 광위민 (왕리홍 분)이라는 캐릭터이다. 학생항일단체의 리더로 왕 치아즈와 서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녀를 치욕과 고통의 사지로 보내야 했던 그는 왕 치아즈의 인생을 망친 장본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광위민이 그녀를 좋아하면서도 그녀를 스파이로 만들었던 것은 그가 가지고 있었던 이상 때문이었을 것이다. 애국, 그리고, 일본에 대한 복수. 그러나, 그의 조직이 계획했던 작전은 잘 풀려가지 않는다. 많은 돈을 이 일을 위해 바쳤던 친구는 언제까지 이런 ‘영웅놀이’, ‘마님놀이’에 빠져 있을 거냐고 그를 비난한다. 이 조직과 작전은 결국 실패하고 그 구성원들의 삶을 부셔 버리며 파국에 이른다. 몇 년 후 다시 왕 치아즈를 찾은 광위민은 여전히 같은 이상을 추구하고 있다. 다만 이 번엔 좀 더 큰 조직에 있을 뿐이다. 광위민에 의하면 그 조직은 이전의 사건이 있었을 때부터 이미 광위민의 ‘애들 장난 같았던’ 학생조직을 지켜 보고 있었다고 한다. 왕 치아즈는 다시 가담하지만 그것은 광위민을 위한 것이나, 나라를 위한 것 같지는 않다. 어쩌면 ‘이’를 다시 만나기 위한 수단이었을 수도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그녀가 광위민의 이상에 동조했다고는 볼 수 없다. 사실 그 이전에도 그의 이상에 대한 동조가 아닌 그에 대한 호감 때문에 그 길을 선택했다가 너무 많이 와 버린 것이리라.

문제는 타자였던 왕 치아즈는 제쳐두고라도, 광위민 그 자신은 자기의 이상이라는 것을 똑바로 보고 있었는가라는 점이다. ‘애들 장난 같았던’ 과거의 이상과 달리 현재의 이상은 분명함을 가지고 있었을까? 광위민은 왕 치아즈는 물론 함께 이상을 추구했던 친구들과 함께 끌려 나와 죽음을 맞는다. 그가 속했던 큰 조직의 보스는 그들을 버리고 달아나 버렸고, 권력자로 보였던 ‘이’도 감시를 받는 하수인에 지나지 않아 왕 치아즈를 구해 줄 여력은 없다. 광위민은 과연 마지막 순간에 숭고한 이상을 위해 최선을 다했느라고, 후회없는 죽음을 맞이한다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남의 손바닥 위에서 현실을 똑바로 보지 못한 탓에 자기는 물론, 친구들, 사랑했던 사람의 인생까지 망쳤다고 생각했을까. ‘애국운동’을 폄하할 의도는 전혀 없다. 단지, 그가 과연 진정으로 숭고한 사명감이나 확실한 목표의식을 가진 인물이었는가에 회의감이 들 뿐이다. 그래서 그의 죽음은 현실을 모르는 어리석은 이상주의자의 몰락으로 보였다. 이는 내게도 깊은 씁쓸함을 가져다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