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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크래프트를 하면서도 느끼는 인지부조화

[스타크래프트를 하면서도 느끼는 인지부조화]

스타크래프트를 시작한 지는 정말 오래되었지만 아직까지 끊지 못하고 있다. 내가 그 중독성을 쉽게 떨칠 수 없는 원인은 팀플레이가 맞아 들어갈 때의 쾌감이 정말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정말로 그만둘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원인은 게임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불신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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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게임에는 게임의 데이터를 조작하는 프로그램들이 존재한다. 게임을 좀 더 쉽게 플레이하기 위한 것들로, 대개 일부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이 자신의 실력을 시험하거나 과시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으로 알고 있다. 1인용 게임의 경우라면, 그래도 게임을 즐기는 데 큰 지장을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즐기는 게임이라면 이는 게임의 밸런스를 무너뜨리고 상대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에 큰 문제를 일으킨다. 특히 유료화되어 사람들이 돈을 지불하는 게임이라면 분명 이러한 행위는 심각한 불법 행위이고 게임회사 측에서도 이를 막기 위해 발벗고 나선다. 그러나, 서버 상에 데이터를 저장하고 운영하는 온라인 게임이 아니라, 개별의 컴퓨터를 연결시켜주는 네트워크 방식 게임인 스타크래프트 같은 경우는 데이터 조작에도 취약할 뿐 아니라, 이것을 근절시키려는 노력도 없다.

그러니, 예로부터 맵핵(상대방 기지를 포함한 맵 전체를 볼 수 있게 만드는 해킹프로그램)이 남발하던 스타크래프트 배틀넷에는 이제 더 많은 핵들이 난립를 하게 되었다. 자원량을 늘려주는 ‘미네랄핵’도 자주 쓰이고, 상대방 컴퓨터에 네트워크 오류를 발생시켜 게임에서 디스커넥트를 유발하거나(튕겨 나가게 만들거나), 오류를 지속시켜 상대방으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게임 자체를 중단하게 만드는 ‘디스핵’도 있다. (이것은 정말 인간성에 대한 신뢰를 뒤흔든다……) 이 밖에 저그 종족의 생산을 도와주는 라바핵 등 다른 해킹 프로그램들도 존재한다고 한다.

정정당당하게 이겨서 승리를 거두는 즐거움보다, 부정한 방법을 써서라도 승리를 거두는 편이 좋다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현실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이 조금 의외라고 느꼈던 이유는, 스타크래프트는 이미 예전 같은 인기 게임이 아니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누가 승수가 많고 승률이 높든지 간에 사람들이 별로 신경 쓰지도 않고 딱히 이득이 될 것도 없다는 얘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승을 더 올리기 위해 저럴 필요가 있을까, 저런다고 재미가 있기나 할까라는 의문이 들곤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문제에 대한 나름의 답을 찾은 것 같다. 별 쓸데 없는 데에서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고 싶어하는 폭력적인 ‘개똥자존심’에 ‘인지부조화’가 더해진 형국이라고나 할까? 이들은 자기가 진다는 사실을 받아 들일 수가 없는 거다. 자신들에게는 한 점의 잘못됨도 허용할 수 없는 것이다. 예전에는 게임 중에 핵을 쓰는 사람이 있으면 ‘젠장’하고 나오면 그만이었다. 그래도 핵 안 쓰는 사람들도 많이 있으니까 그런 사람들을 만나길 바라면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핵을 안 쓰는 사람들끼리 게임을 해도, 즐거워질 수가 없다. 누군가 자기가 불리해지면 “너 핵이지!”라며 욕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아니, 이 타이밍에 이게 나오는 것이 뭐가 이상하냐?”라고 얘기를 한들 돌아오는 것은 욕뿐이다. 자신이 지는 것은 ‘상대방이 반칙을 했기 때문일 뿐’이지 자기가 못해서나 상대방이 잘해서가 절대 아니라는 생각이 너무나 확고하게 잡혀 있다. 이와 같은 불신의 상황에서 무슨 ‘Play’가 되겠나.

‘인지부조화’라는 것은 심리학에서 자기가 기존에 알고 있던 것과 다른 정보가 들어 올 때 거부 반응을 보이는 것을 말한다.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저런 행동을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쉽지만 현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지부조화의 경향을 보인다. 예를 들어 만약 A라는 사람이 B라는 사실을 믿고 있는데, 그것이 거짓이라고 하는 90의 정보가 들어오면 그것은 무시해버리고 그것이 참이라고 하는 10의 정보만을 ‘역시 그렇다니까.’라고 하며 받아들이는 형태를 보이게 된다. 과거 PD수첩이 황우석 사건을 다루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PD 수첩을 악의 축으로 취급했다. 우리의 영웅인 황우석을 어찌 감히 매도하냐며 광고공급중단 운동까지 벌였었다. 당시의 나는 ‘저러다 만약에 PD수첩 말이 진짜라고 판명나면 저 사람들은 도대체 어쩌려고 저러지?’라는 생각을 했었다. 내가 믿고 있는 것이 틀릴 소지는 언제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벌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이제는 반대로 PD수첩이 영웅대접을 받고, 거기에 반대되는 주장을 하면 몰매를 맞을 수도 있는 상황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또 과연 옳은 것인가? 우리가 편을 들어야 하는 것은 ‘진실’이고 ‘정의’이지 황우석도 아니고 PD수첩도 아닐 텐데 말이다. (나 역시 PD수첩을 좋아하지만 PD수첩의 주장이 틀릴 가능성도 있다는 사실은 염두해야 한다.)

정치권의 끝없고 무용한 다툼이 싫었는데, 이제는 시민들도 정치적인 다툼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되었다. 타협과 토론이 최선의 길이다라고 말하고 싶고, 믿고는 싶다. 그러나, 인지부조화를 벗어나기 힘든 인간의 현실 속에서 이 문제가 쉽게 끝나지는 않을 것 같아 씁쓸하다.